알뜰 살뜰 살면 희망이 보인다. 이 말은 신혼 부부를 대상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다. 불황의 시대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는 보편적인 경구이다.
안 쓰고 안 먹고 하는 것이 절약의 출발이다. 먹을 것 다 먹고 쓸 것 다 쓰고 욕망대로 한다면 돈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가정의 주부들은 이제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쥐어짜 터질 지경이다. 임계치를 넘는 근검함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민의 삶은 늘 그랬다.
서민들은 이제 일반적인 근검 절약을 넘어 ‘스마트한 근검 절약’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재생’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중고품쇼핑몰이 성업 중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통신비에 학원비만 합쳐지면 모두들 머리가 깨질 지경에 이르게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도 생활고에 허덕이는 그들이다.
책도 헌책을 보고 물품도 헌 것을 구입해서 쓰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이뿐이겠는가. 더욱 알뜰한 사람은 버리게 된 물건을 뜯어내 조합해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 쓴다. 중고품에 대한 개인 거래도 늘고 있다.
인터넷 벼룩시장이나 쇼핑몰에는 개인들의 중고거래가 성업 중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서민들의 삶의 행태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는 알뜰이나 근검도 사치이다.
시내 유명한 모 벼룩시장에는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들고 나와 파는 사람들이 점점 눈에 띄고 있다. 용도가 되든 안 되든 상관이 없다. 팔수 있는 물건이라면 들고 나와서 팔아야 될 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장마당에는 장사가 아니라 생존이 거래되는 것이다.
방금 내가 나온 집에서 쓰고 있는 아주 낯익은 물건들이다. 그야말로 가재도구들까지 나와서 판매대상이 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거의 쓸모없는 낡은 책, 망가진 라디오, 카세트 테이프 등 가정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들이 그냥 장마당에서 거래 품목으로 나온다.
어느 가장이 곤궁이 너무 심하다보니 집에서 아무것이나 손에 닥치는 대로 들고 나와 파는 듯한 물건들이다. 보자기를 엉성하고 깔아놓고 때가 꾀죄죄한 물건들을 다 팔아봐야 몇 만원도 안 되지만 거기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내가 아침에 쓰던 숟가락이나 젓가락 , 그릇, 망가진 카세트, 책상위에 낡은 라디오, 선풍기, 드라이어, 면도기 등을 갖고 나와 무작정 팔겠는가? 이것이 골목 시장의 풍경이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장을 서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 생존을 파는 것이 여기다. 생활의 비극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 가정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가장의 손에 들려나와 처분되는 느낌은 처연하다.
이곳에선 더 이상 중고용품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들이 송두리째 거래되고 있다. 알뜰 살뜰, 근검 절약, 검소, 청빈, 안빈낙도를 넘어선 더 절박하고 비극적인 삶들이 펼쳐지고 있다.
근검과 절약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황망하게 계획 없이 들고 나온 생활의 때가 그대로 묻어 있는 물건들이다. 그래도 그 물건들 속에는 내일을 살아보려는 의지가 꿈틀거린다. 쉽게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히 절망이라는 말을 내뱉기도 어렵다.
희망과 절망이 반반씩 숨 쉬는 것을 목도할 뿐이다. 삶이 그야말로 담담하게 다가올 뿐이다. 억울함도 분노도 내세울 틈이 없다. 그렇다고 절박하기만 상황은 아니다.
누구도 그들을 모독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영하 날씨보다 더 차가운 사회의 냉기로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은 시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