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심각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벌어졌다. 임차인 김모 씨가 건물주 이모 씨를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다행히 이 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경찰은 김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했다.
갈등은 해당 건물을 매입한 이 씨가 임대료를 기존보다 네 배나 올리면서 불거졌다. 월 297만원의 임대료가 순식간에 1200만 원으로 뛰었으니 김 씨의 억울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
김 씨는 이 씨가 어떠한 조정 절차도 없이 강제집행을 저질렀다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특히 법원 명령에 따라 실시된 감정평가에서 한 평가사는 해당 지역 월세의 적정가를 300만 원대로 평가했다.
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건물주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대다수 네티즌들은 건물주가 임대료를 과하게 부른 목적이 임차인 쫓아내기에 있다는 시각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현상이 어제오늘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활성화로 인한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가게를 떠나게 만드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이왔던 일이다.
애초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은 고급주택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가 지금은 ‘둥지 내몰림’으로 통용되고 있다. 상권이 뜨게 되고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이 따라오면서 토박이 상인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현상이다.
수년 전부터 젊은층에 인기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는 마포구 연남동 일대와 용산구 새가정길, 성동구 성수동 주변이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꼽힌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외식업에 많이 몰리는 특징을 보인다. 외식업 경영주들이 새로운 콘셉트와 아이디어로 열악했던 상권을 살려내 고객이 몰려오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올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이런 사례는 청년창업자들의 몫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창업자금이 부족해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에 들어가서 자신의 열정과 성실로 상권을 살려 놓으면 건물주에게 쫓겨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서울시 각 지역구들은 방지책 마련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성동구는 지난 2015년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방지 조례를 만들었다. 해당 조례는 임대료 안정을 위한 이행 협약에 참여하는 건물주에 한해 용적률 완화 혜택을 주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강남구는 건물주들과 협의해 기존 임대료를 낮추면서 인상을 자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세입자들을 모집한 바 있다. 영업이 안 돼도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 것이 건물주들의 관행이었던 터라 큰 주목을 받았다.
강북구도 지난해 ‘지역상권 상생협력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직·간접적으로 활성화가 예상되는 지역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밖에 도봉구, 서초구·마포구·중구 등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며 자영업자들에게 힘을 불어넣겠단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부작용이 속출해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서울시 서촌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고자 2014년부터 이곳을 엄격히 관리하고 나섰다.
이후 상권의 70%가 업종을 바꿀 만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특화된 외식매장으로 상권이 활성화됐지만 나중 경쟁력을 갖춘 외식 매장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 것이다. 결국 이 상권은 반짝 뜬 상권으로 전락하면서 정부 정책이 되레 상권의 부흥을 막았다는 지적이다.
어찌 보면 문제 해결은 간단한 곳에 있다. 속칭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비아냥거림이 왜 나왔는지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건물주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겠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건물주들은 자신의 이익만이 아닌 해당 상권의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특히 비양심적인 행태가 이어질수록 비판적인 여론은 쌓여만 갈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여론이 차곡차곡 쌓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바보 같은 짓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해타산에 능하다면 어떤 것이 현명할지 정답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