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창당한 ‘앙 마르슈!’(En Marche!)는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하며 유럽 정치사를 새로 썼다. 프랑스 최초 원외에서 시작해 에마뉘엘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으로 일약 집권여당이 된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양립하는 유럽 정치의 보편적 경향에서 중도주의 정당이 승리한 센세이션이자 창당 1년 만에 집권여당이 된 가히 혁명에 가까운 결과다.
유럽 언론은 당시 대선에서 프랑스 유권자들이 모험에 가까운 정치적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혹자는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다는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유권자들이 앙 마르슈!의 혁명 완수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촌평이다.
우리 정치권도 이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이 강하게 작용하는 국내 정치권이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치사는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가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김영삼 정부의 문민정부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진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보수까지 권력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권력이 다시 진보로 넘어왔고 이제 집권 2년차를 맞고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대결은 530만 표라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면서 당시 언론은 ‘진보의 몰락’이라 표현했다. 진보에 염증을 낸 국민의 ‘회초리’라는 평가였다.
정권교체를 위해 한나라당·뉴라이트 등의 보수 세력들이 똘똘 뭉친 것에 반해 여권은 열린우리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까지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여 기존 진보층에서도 이탈이 심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탄생에 중도 진영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중도세력이 17대 대선에서 큰 힘을 발휘했고, 애초부터 이를 간파하고 중도층 껴안기에 나선 이명박 후보는 중도층 흡수 후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세력을 확산해나갔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41.08%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새 정부를 꾸렸다. 득표율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국민적 지지가 견고하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집권 이후 남북정상회담 성사부터 소위 ‘적폐청산’이란 명목 하에 강공 드라이브를 건 것이 국정 운영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년이 넘게 지지율 70%대의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성공적인 국정 수행이라 평가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다만 최근의 몇몇 모습들은 국정 원동력의 약화를 자초할 수 있는 위험신호다. 지난 14일 2019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이 나자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경영계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는 방안이 무산된 상황에서 최저임금까지 두 자릿수 인상을 강행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도 인상폭이 예상보다 낮아 2020년까지 문 대통령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은 물 건너갔다고 공약 미이행이라 비판하고 나선다.
이에 대해 여권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이슈 대응책으로 일자리자금과 근로장려금 확대 카드를 내세울 것이라 한다. 선심성 ‘세금 퍼주기’란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더욱이 최악의 청년실업률부터 내수 침체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적신호를 보이는 가운데 지금의 난관이 지난 정권에서 비롯됐다는 발언은 성숙한 모습이 아니다. 여권은 최근 언론을 통해 “고용부진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산업 전반의 구조개선에는 소홀한 채 건설 및 토건 사회간접자본에만 집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했다.
남 탓보다는 응당 대책 마련부터 하겠다는 의지가 당연한 반응이면서 국민에게 진정성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집권 초기도 아니고 여당으로 집권 2년 차에 전 정부 책임론은 타이밍이 한참을 벗어났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말기 1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인 것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개혁정책 실패가 진보 세력의 이탈을 부추기면서 정권 실패로 귀결됐다는 진단이다. 당시 노 대통령과 여권의 불협화음에 따른 정책 일관성 부족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강한 반감을 가진 이들은 현 정부가 제2의 노무현 정부라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들의 비아냥거림을 단순히 흘겨듣지 말아야할 것은 문 대통령 본인이 참여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격언을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왔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이들의 쓸쓸하고 비참한 말로를 우리는 왜 반복해서만 봐야할까.
정치권은 이념 논쟁, 과거 청산과 같은 이슈보다 좀 더 희망적이고 발전적인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할 책임이 있다. 정치권의 신물 나는 우려먹기가 무한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우리 정치권에도 프랑스 앙 마르슈!와 같은 혁명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위험하더라도 차라리 절망보다 희망을 꿈꾸자는 그런 마음이 유권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