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위험한 여행이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기술은 또 다른 기술을 낳고,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무엇을 위해 만들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묻는 ‘기준’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인간이 그 발전의 방향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기술만이 아니라, 그 기술과 변화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일 수 있다.
여행이 낯설수록 지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길이 험할수록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기업은 경영 과정에서 매일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그리고 선택이 어려울수록 그 결정을 이끄는 기준의 중요성은 커진다.
최근 비콥(B Corp) 인증을 운영하는 비랩(B Lab)은 인증 기준을 19년 만에 개편했다. 비랩은 기업이 사람과 사회, 지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추진하는 글로벌 비영리단체다.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충족한 기업을 비콥으로 인증하고 있다.
이번 개편에서 주목할 부분은 평가 기준의 변화다.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등 기업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사회·환경적 책임을 보다 구체적인 행동 기준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인증 체계를 바꿨다.
기존에는 여러 영역의 성과를 점수로 합산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기준에서는 기업의 목적 및 이해관계자 지배구조, 공정한 노동, 정의·형평성·다양성 및 포용성, 인권, 기후행동, 환경 관리 및 순환, 대정부관계 및 집합적 행동 등 7가지 임팩트 주제에 구체적인 성과 요건을 두었다.
잘하는 영역에서 받은 높은 점수로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던 방식에서 기업이 각 영역에서 갖춰야 할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는 방향으로 달라진 것이다.
인증 이후의 과정도 중요해졌다. 기업은 평가를 거듭할 때마다 지속적인 개선을 보여줘야 한다. 비콥 인증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해당 기준을 활용해 자신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점검할 수 있다.
결국 이번 개편은 기업을 향한 질문의 변화를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점수를 얻었는가’에서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로, ‘얼마나 측정했는가’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로 질문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기업은 더 많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자동화 기술이 기업의 의사결정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면서 과거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던 문제까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도 늘고 있다.
그럴수록 기업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더 많은 데이터만은 아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던질 수 있는 질문 역시 필요하다.
‘이 선택은 우리의 목적에 맞는가?’
‘이 선택이 사람과 환경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살펴보았는가?’
‘10년 뒤에도 이 선택을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콥의 기준이 모든 기업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마다 산업과 규모, 사업 환경이 다르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선택 앞에서 어떤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준이 있다는 것은 모든 순간의 정답을 미리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순간에도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도록 하는 장치에 가깝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앞으로도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기존에 없던 사업이 만들어지면서 기업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범위 역시 계속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위험한 여행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속도만큼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업 역시 선택 앞에서 흔들릴 때 다시 돌아와 판단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19년 만에 달라진 비콥의 새로운 기준이 기업에 던지는 질문도 결국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