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의 문을 두드리지 않기로 한 사건을 단순한 시상식 불참으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이'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를 한 영웅의 모험담에서만 찾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문화가 세계의 보편적 언어가 되는 과정에는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고, 반복되는 기억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거대한 ‘서사의 축적’이 필요하다.
BTS는 지난 7월 2027년 열리는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 뒤 나온 결정이었다. BTS는 지역이나 언어로 음악을 구분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BTS가 단순히 상 하나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 세계적인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누가 누구를 인정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비서구권 예술가들에게 미국과 유럽의 권위 있는 시상식과 비평 체계는 일종의 최종 관문처럼 기능했다. 그곳에서 인정받으면 ‘지역 문화’가 ‘세계 문화’로 승격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BTS의 선택은 이 오래된 승인 구조에 미묘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가 이미 소비하고 있는 음악을 다시 지역의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이 과연 포용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경계 설정인가 하는 문제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설명은 다르다. 아시안 팝 부문은 아시아 음악을 분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다양성과 예술성을 더 널리 알리고 평가받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또 해당 부문에 출품하더라도 올해의 앨범이나 올해의 노래 등 주요 부문의 경쟁이 막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논쟁을 단순히 ‘그래미의 차별 대 BTS의 저항’이라는 이분법으로 환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오디세이'를 떠올릴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다룬다. 그는 바다를 건너고, 괴물을 만나고, 신들의 분노를 견디고, 유혹을 거부하거나 때로는 그 유혹 속에 머문다. 목적지는 분명하다. 이타카다.

그런데 '오디세이'의 위대함은 오디세우스가 결국 이타카에 도착했다는 결론에 있지 않다. 그가 이타카에 도착하기까지 무엇을 겪었는가에 있다.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 인간을 만든다는 서사다.
BTS의 지난 시간을 같은 구조로 읽어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빌보드, 스타디움 공연, 그래미 후보 지명, 영어권 대중시장 진입, 세계적인 팬덤 형성은 각각 하나의 도착점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를 통과하면 다시 다음 관문이 나타났다. 그래미 역시 오랫동안 그런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BTS는 그래미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아직 수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상을 원하던 존재가 어느 순간 상을 거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중요하다. 권위가 없는 사람은 권위를 거부하기 어렵다.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충분한 대중적·문화적 자본을 확보한 존재는 기존 권위와 거리를 설정할 수 있다. 따라서 BTS의 그래미 불출품은 ‘그래미를 받지 못했으니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 대중문화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라는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여기서 '오디세이'와 BTS를 연결하는 보다 근본적인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서사의 축적이다.
'오디세이'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호메로스 서사시를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형성에 오랜 구전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핵심적으로 다뤄왔다. 반복되는 이야기와 정형화된 장면, 기억과 공연의 과정이 축적되면서 거대한 서사시의 토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현대 연구 역시 호메로스 서사시를 구술성과 문자성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바라본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문명적 서사는 한 명의 천재가 어느 날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시 말하고, 조금씩 변형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서사는 두꺼워진다. 이야기에 시간이 침전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다. ‘고향을 떠난 인간’, ‘전쟁에서 돌아오는 인간’, ‘유혹을 견디는 인간’, ‘정체성을 잃었다가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수많은 원형이 그에게 겹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디세우스를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인 한 사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본다. 이것이 지역적 이야기가 보편적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다.
BTS가 직면한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 여기에 닿는다. K팝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필요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을 세계 시장에서 식별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브랜드였다. 한국이라는 출발점을 명확하게 보여줬고, 기존 영미권 팝과 다른 생산 방식과 팬덤 문화를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가 성장하면 처음 자신을 설명해주던 이름이 어느 순간 경계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음악’이라는 설명으로 세계에 진입했지만, 충분히 세계화된 뒤에도 계속 ‘한국의 음악’이라는 별도의 칸 안에서만 평가받아야 한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언제까지 K팝은 K팝이어야 하는가.
영국 가수가 부르는 음악을 언제나 ‘브리티시 팝’이라는 별도 범주에 넣지 않고, 미국 가수의 음악 역시 언제나 ‘아메리칸 팝’이라는 지역 부문에서 평가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아시아 음악은 언제 ‘아시아의 팝’을 넘어 그냥 ‘팝’이 되는가.

BTS가 던진 질문의 철학적 무게는 여기에 있다. 그래미가 아시아 음악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는 누가 보편을 정의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근대 이후 세계 문화시장에서 ‘보편’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완전히 중립적이지 않았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은 종종 별다른 지역적 수식어 없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비서구에서 등장한 것은 지역적 정체성을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학에서도, 미술에서도, 음악에서도 반복된 구조다. 서구의 것은 장르가 되고 비서구의 것은 지역이 되는 비대칭이다.
BTS의 선택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읽을 여지가 생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를 그래미가 의도적으로 아시아 음악을 배제하기 위해 만든 장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오히려 인정의 폭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흥미로운 것은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선의로 만든 분류도 경계가 될 수 있다. 인정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이 다시 구획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인정의 역설’이다. 어떤 존재를 특별히 인정한다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인 동시에 그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시아 음악을 위한 상’을 만드는 순간 아시아 음악은 더 많이 보이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아시아 음악’이라는 경계 안에서 다시 보이게 된다. BTS는 바로 그 모순을 건드렸다.
그리고 '오디세이'는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이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오늘날 누구도 '오디세이'를 단순히 ‘에게해 지역 콘텐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이야기지만 인류의 고전으로 받아들인다.
왜 가능했을까. 시간이다. 그리고 축적이며, 서사다.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이 그 이야기를 읽었고, 다시 썼고, 연극으로 만들었으며, 그림을 그리고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수많은 시대가 오디세우스를 자기 시대의 인간으로 다시 불러냈다. 지역적 이야기가 보편적 이야기가 되는 데에는 이처럼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대중문화는 지금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압축된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 문화의 세계화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수십 년, 때로는 몇 년 만에 세계적인 서사가 형성된다. 유튜브와 스트리밍, 소셜미디어와 팬 커뮤니티가 과거의 구전 전통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반복하고 확산한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흥미롭게도 원리는 비슷하다. 이야기는 반복될수록 강해진다. 팬이 공연을 기억하고, 영상을 공유하고, 가사를 번역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다시 해석한다. 이것 역시 일종의 현대적 구전이다.
고대의 음유시인이 광장에서 노래를 반복했다면 오늘날에는 수천만 개의 계정이 이야기를 운반한다. 그래서 BTS라는 이름은 일곱 명의 가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해 만들어낸 거대한 문화적 텍스트가 됐다.
이 관점에서 ARMY의 존재도 다르게 보인다.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서사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기억 장치다. 고대 서사시가 청중의 기억 없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현대 대중문화 역시 팬덤의 기억과 재생산 없이 장기적인 서사를 구축하기 어렵다. 호메로스 연구에서 구전 시인이 기억의 여러 자원을 활용해 이야기를 구성하고 공연했다는 분석은 ‘문화가 기억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보다 넓은 명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BTS가 지금 축적하고 있는 것은 음반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기록만이 아니다. 기억의 총량이다. 그래미 후보가 됐던 기억, 수상하지 못했던 기억, 세계적인 무대에 섰던 기억, 한국어 노래가 세계에서 불렸던 기억, 군 복무로 활동을 멈췄던 시간, 다시 돌아온 기억, 그리고 마침내 그래미 출품 자체를 선택하지 않은 기억까지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쌓인다.
이 각각의 사건은 당시에는 뉴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연결되면 역사가 된다. 그리고 역사가 다시 반복해서 이야기되면 신화가 된다.
'오디세이'가 보여주는 서사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오디세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괴물 하나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키클롭스, 세이렌, 칼립소, 포세이돈의 분노와 귀향이라는 각각의 사건이 연결되면서 ‘돌아가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원형이 만들어진다.
BTS 역시 개별 기록만 놓고 보면 대중음악 산업의 성공 사례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연결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타난다. 한국어 음악을 들고 세계 시장으로 나간 그룹이 세계 최대 음악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그곳의 가장 오래된 권위 가운데 하나에 끊임없이 도전하다가, 어느 순간 그 권위가 제시한 새로운 분류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이것은 성공담보다 훨씬 강한 서사다. 왜냐하면 성공에는 끝이 있지만 질문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BTS의 그래미 불출품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몇 년 뒤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간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시아 대중문화가 서구의 기존 인정 체계와 관계를 재설정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지금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서사는 당대인이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완성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이' 역시 처음 노래됐던 순간부터 ‘인류의 고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세대가 그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고전이 됐다. 여기에서 ‘서사 축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드러난다.
위대한 문화는 세계에 진출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의 기억 속에 남아야 한다. 유행은 소비되지만 서사는 기억된다. 히트곡은 다음 히트곡에 밀려날 수 있지만 이야기는 다음 세대의 해석을 만나면서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가 서구 문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는 BTS라는 한 그룹의 성공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던 오래된 지형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배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BTS의 다음 경쟁 상대는 다른 가수일 필요가 없다. 어쩌면 시간이다.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을 듣는가. 30년 뒤에도 새로운 세대가 BTS를 다시 해석하는가. 50년 뒤 한국 대중문화사를 설명할 때 이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는가. 그리고 언젠가 ‘K팝’이라는 지역적 설명이 없어도 BTS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세계 대중음악사의 한 부분으로 서술되는가.
그때 비로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감으로써 여행을 끝냈다. 그러나 '오디세이'의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야기는 인간의 기억을 타고 2천 년 넘게 이동했다. 고대 그리스의 작은 세계에서 출발한 한 인간의 귀환담은 마침내 국적을 잃고 인간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됐다.
BTS도 어쩌면 비슷한 경계 앞에 서 있다. 그래미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보다 더 큰 질문은 이들의 음악과 이야기가 ‘한국에서 세계로 간 성공담’이라는 첫 번째 서사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적인 문화가 된다는 것은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것과 같지 않다. 유명세에는 정점이 있지만 서사에는 축적이 있다. 그래미 트로피는 한 해의 승자를 기록한다. 그러나 문화사는 누가 더 오래 기억됐는지를 기록한다.
그래서 BTS의 그래미 거부와 '오디세이' 사이에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질문이 흐른다. 누가 세계의 중심인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끝내 세계의 기억으로 남는가.
BTS가 지금 건너고 있는 바다는 어쩌면 그래미라는 시상식보다 훨씬 넓다. 그 바다의 이름은 시간이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고 있는 이타카는 수상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에서 ‘한국’과 ‘아시아’라는 출발점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지점일지 모른다.
지역성을 버려 보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지역적인 것에서 출발해 마침내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 '오디세이'가 그 길을 걸었다.
BTS의 항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항해를 둘러싼 이야기는 이미 쌓이고 있다. 그리고 문화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됐다.
이 같은 글로벌 팬덤의 힘은 현재 진행 중인 국내 팬 투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21일 오전 11시 26분 현재 8월 네티즌 어워즈 최고그룹상에서 376득표로 8위에 랭크돼 있다. 그간 네티즌 어워즈에서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팬들의 지지를 받아온 가운데, 이달에도 글로벌 팬심을 등에 업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8월 투표가 아직 진행 중인 만큼 남은 기간 순위 경쟁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AI가 일부 조력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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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