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일본 간사이 지역을 여행하는 재미는 ‘가까움 속의 다름’을 발견하는 데 있다. 누군가 기자에게 간사이 여행을 추천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짧은 이동만으로도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도시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고베에 닿고, 다시 길을 달리면 교토와 나라가 기다린다. 지도 위에서는 서로 이웃한 도시들이지만 직접 발을 디뎌보면 거리의 풍경부터 분위기, 여행의 속도까지 저마다 확연히 다르다.
화려하고 활기찬 오사카를 지나 고베에서는 개항 이후 들어온 서양 문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교토에 들어서면 풍경은 다시 바뀐다. 천년 수도의 시간이 도시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거대한 불상과 사슴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짧은 이동거리 안에서 일본의 근대와 고대, 종교와 음식 문화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오사카, 고베, 교토, 나라를 함께 둘러보는 간사이 여행의 매력이다.
개항과 함께 달라진 도시…고베에서는 '맛'도 여행이 된다

고베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시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다. 일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고베는 개항 이후 외국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다른 일본 도시와는 조금 다른 색채를 갖게 됐다.
그 흔적은 음식에도 남아 있다. 특히 빵과 양과자를 비롯한 디저트 문화가 발달해 있어 거리를 걷다 보면 디저트 가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에서 벗어나 빵과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고베 여행 코스가 되는 셈이다.
'고베규'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소고기로 꼽히는 고베규는 고베 여행에서 한 번쯤 맛보고 싶은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베와 술의 인연도 깊다. 고베의 나다 지역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케 양조 지역 가운데 하나다. 좋은 물과 쌀, 항구를 기반으로 양조 문화가 성장했고 지금도 여러 양조장이 고베를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남아 있다.
도심을 벗어나면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고베 북쪽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지인 아리마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한 도시에서 항구와 디저트, 고베규, 사케, 온천까지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고베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천년의 시간이 보이는 교토
고베에서 교토로 넘어가면 도시의 느낌부터 달라진다.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라는 명성과 달리 교토 중심부에서는 초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도시답게 역사적인 경관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교토에서는 이동 방식에서도 다른 대도시와 차이가 느껴진다. 여행객들이 시내 곳곳을 오갈 때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지하철도 운행되고 있지만 도쿄나 오사카처럼 촘촘한 철도망만으로 주요 관광지를 모두 연결하기는 어렵다.
교토에서 지하철을 건설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땅을 파는 과정에서 오랜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교토는 도시 개발과 문화재 보존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천년 고도의 무게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교토고쇼는 과거 천황이 거처했던 공간이다. 여기에 도쿠가와 막부의 역사를 품은 니조성과 헤이안신궁 등 일본사의 여러 시대를 보여주는 장소들이 한 도시에 모여 있다.
교토가 단순히 '옛날 도시'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학 가운데 하나인 교토대학교가 자리한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오래된 사찰과 신사, 대학과 현대적인 상업시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다. 교토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 교토 상가는 박지성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선수 시절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던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절벽 위 청수사에서 내려다본 교토
교토를 대표하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는 청수사다. 청수사는 교토를 처음 찾은 여행객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청수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오래된 목조건축과 현대의 교토 시가지가 한눈에 겹쳐지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청수사에는 이름의 유래가 된 오토와 폭포가 있다.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에는 각각 지혜, 인연, 장수와 관련한 의미가 전해진다.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관광객들의 모습 역시 청수사에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교토의 거리를 계속 걷다 보면 야사카신사와 같은 또 다른 명소와 마주한다. 한 장소만 보고 이동하기보다 골목과 상점가, 사찰과 신사를 이어 걸어보는 것이 교토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오랜 세월 수도였던 도시답게 교토의 여행은 특유의 고즈넉함이 기억에 남는다.
사슴으로 대표되는 도시, 나라
교토에서 나라로 향하면 여행의 시간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는 8세기 일본의 수도가 자리했던 고도다. 그 중심에 동대사가 있다.

동대사는 당시 국가적인 재난과 사회적 불안을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염원 속에서 국가적 규모로 조성됐다고 한다. 거대한 대불이 자리한 대불전에 들어서면 건물의 규모부터 여행객을 압도한다. 내부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불교 문화재들이 보인다.

이곳의 역사는 한반도와 고대 일본 사이의 교류를 떠올리게 한다. 나라 시대 일본의 불교와 건축 공예 등 문화 발전 과정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과 기술,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국인 여행객이 나라의 고찰을 바라보며 고대 동아시아의 교류사를 함께 떠올려볼 수 있다.
동대사를 나서면 자연스럽게 사슴들과 만나게 된다. 주변에서 사슴들이 관광객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사람 옆을 태연하게 지나가거나 먹이를 든 관광객에게 다가오는 사슴의 모습은 나라를 상징하는 풍경이 됐다.

이곳에서 사슴은 단순히 관광을 위해 풀어놓은 동물이 아니다. 전승과 연결돼 오랫동안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불을 보고 나온 뒤 사슴들이 거니는 공원을 걷는 경험은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대비다.
간사이는 하나의 여행지가 아니다
오사카와 고베, 교토와 나라는 서로 멀지 않다. 열차와 버스를 이용하면 한 번의 여행에서 여러 도시를 묶어 둘러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만 보고 이들을 하나의 비슷한 여행지라고 생각한다면 간사이의 절반도 모르는 셈이다.
오사카에는 대도시 특유의 활기와 먹거리 문화가 있고, 고베에는 개항 이후 형성된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다. 교토에서는 천년 고도의 역사와 사찰이 일상의 공간과 맞닿아 있고, 나라에서는 사슴을 만날 수 있다.
간사이의 네 도시를 차례로 여행하는 길은 단순한 도시 이동이라기보다 일본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도에서는 나란히 붙어 있던 네 도시가 여행을 마치고 나니 전혀 다른 네 개의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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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권오성 기자





